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란드 침공 (문단 편집) ==== 폴란드 해군 ==== 폴란드 해군은 육군이나 공군과 비교해도 매우 빈약했다. 당장 폴란드의 역사만 보아도 [[윙드 후사르]] 등 화려한 활약을 펼친 폴란드 육군에 비해 폴란드 해군은 내세울 만한 게 거의 없었던 것이다. 1918년에 창설되어 그 역사가 21년밖에 안 되었던 폴란드 해군의 가용전력은 [[구축함]] 4척, [[잠수함]] 5척, [[기뢰함]] 1척, 기타 [[소해정]] 몇 척에 불과했고 전쟁이 벌어지는 즉시 압도적인 전력의 [[독일 해군(나치 독일)|독일 해군]]에 의해 해안 지역에서 전멸당할 가능성이 컸다. 영국 사령부는 이들이 해안 지대에서 가망 없는 전투를 하느니 차라리 프랑스와 영국으로 이동하여 연합국 해군과 함께 연합 작전을 펼치는 것이 훨씬 낫다는 판단을 내렸고 8월 24일에 폴란드군 총사령관 에드바르트 리츠시미그위(Edward Rydz-Śmigły)에게 폴란드 해군의 주요 전력을 자신들 쪽으로 이동시키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망설였던 리츠시미그위는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8월 26일 폴란드 함대 사령관 [[https://en.wikipedia.org/wiki/J%C3%B3zef_Unrug|유제프 운루크]](Józef Unrug / Joseph von Unruh, 독일어 표기) 소장은 작전 명령서에 서명했고, 8월 29일, 리츠시미그위의 명령이 내려짐으로써 'Peking([[베이징]]), Peking, Peking'이라는 신호와 함께 폴란드 해군 전력의 거의 전부였던 3척의 구축함인 [[그롬급 구축함|그롬]](Grom), 브위스카비차(Błyskawica), 그리고 비헤르급 구축함 부자(Burza) 함이 조국을 떠나 영국 에든버러를 향한 머나먼 항해길에 올랐다. 이들 3척은 중간에 독일 해군 및 정찰기와 조우하기도 했으나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9월 1일 오전 9시 25분에 조국이 나치 독일에 침략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들은 낮 12시 58분 영국 해군 함대에 합류하여 오후 5시 37분 에든버러의 항구에 정박하였다. 한편 폴란드 항구 헬(Hel)에 남아 있던 기뢰함 [[그리폰급 기뢰부설함|그리프]](Gryf)와 비헤르급 구축함의 네임쉽 비헤르(Wicher)는 9월 3일 [[Ju 87]]의 공습으로 인해 격침당했다. 이 외에도 폴란드 침공 기간 동안 간신히 살아남은 폴란드 잠수함 2척이 영국으로 이동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렇게 독일군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3척의 구축함들의 운명은 각각 달랐다. 그롬은 [[노르웨이 침공]] 도중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59명의 전사자를 내고 격침되었고, 브위스카비차 같은 경우에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고정 방공포대로 큰 활약을 세우기도 했고 전후까지 살아남는데도 성공하여 현재 보존 중이며, 부자는 마찬가지로 전후까지 살아남아 전시되다가 노후화로 인해 스크랩되었다. 한편 이 외에도 폴란드 망명 해군은 이후 영국으로부터 추가적으로 함선을 대여받고 전쟁에 참여하며, [[비스마르크 추격전]]과 [[티르피츠]] 공격에도 참가했다. 여담으로 영국으로 망명하는 데 성공한 운 좋은 잠수함 2척 중 하나인 오제우(Orzeł)는 이후 참으로 드라마틱한 함생을 살게 된다. 자세한 것은 [[오제우]]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